대학 · 정부 · 기업 힘 합쳐야
노벨상 기반 위한 1조원 연구기금 모금 어떤가
조장희 고려대 석좌교수
현대 과학의 상징이자 가장 큰 관심사이며, 한 나라의 문화 발전 수준을 보여주는 척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노벨상은 그 나라의 문화와 전통, 그리고 학문의 종합적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과학 분야의 노벨상은 학문적 기여도가 매우 빠르게 입증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수(십)년 전에 과학자가 이룩했던 업적이 마치 세계적 공헌에 대해 정중한 예우를 갖추는 것으로 여겨지기에 더욱 전 세계가 이를 주목하고 있다. 또한 노벨상은 일부 집단의 의도적인 추천이나 계획적 시도로는 얻을 수 없는 유일무이한 포상이라는 데 그 의미를 더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과학계는 노벨상 수상자에 단 한 명의 이름도 올리지 못했다. 이는 우리나라 과학계의 현재의 체계와 연구 활동 수준이 많이 미흡하다는 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우리나라가 노벨상 수상을 위해 지속적으로 준비하고 노력해야 할 것들을 꼽아본다.
첫째, 대학은 가르치기만 하는 곳이 아니라 세계 속에서 치열한 학문 경쟁을 하는 연구의 중심체이므로 대학에는 연구를 주도할 수 있는 세계적인 학자들이 필히 있어야 한다. 이들은 세계의 연구를 선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며, 젊은 세대를 이끌어 세계적 연구자로 인도할 수 있는 학문적 선도자여야만 한다.
둘째, 노벨상 수상 수준의 연구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수(십)년의 학문의 대를 이은 연구만이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는 것이다. 연구 결과를 얻은 후 평균 20~30년이 지나서야 그 성과가 인정되어 노벨상이 수여되는 많은 사례들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연구의 연속성과 가능성을 보이는 훌륭한 연구들은 지속적으로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
셋째, 우리나라에 수백 개가 넘는 대학들 전부가 연구 중심 대학이 될 수는 없다. 국가재정이 부족할 뿐 아니라 인적자원 역시 턱없이 부족하기에, 우리는 몇 개의 대학만을 연구 중심 대학으로 선별하여 중점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중국은 이러한 부분에서 앞선 정책을 펼치며, 100개의 연구 중점 대학을 선별 지원하고 있으며 국가적인 차원에서 ‘1000인 프로젝트’와 같이 세계적인 과학자를 유치하려는 프로젝트를 시행하여 석학들을 중국 대학으로 영입하고 있다. 중국의 전체 대학 중 연구 중심 대학은 20개 대학 중 하나이니, 이 비율을 우리나라에 적용하면 5개 대학이 적당하다.
넷째, 사람과 연구비가 모인 연구 중심 대학에서는 필히 세계적인 대형 연구과제(Big Science)를 해야 한다. 버클리대의 로렌스(Lawrence) 연구소, 시카고대의 아르곤(Argonne) 국립연구소, 아이비리그 대학의 브룩헤이븐(Brookhaven) 국립연구소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현대 과학기술 연구는 1억~2억원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대학에서는 빅 사이언스를 하면서 젊은 과학자들이 돈 걱정 없이 대형 프로젝트에서 연구하면서 다른 사람이 못 해본 연구에 참여해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줘야 한다.
다섯째, 노벨상급의 첨단 과학기술 연구는 직, 간접적으로 우리의 국방과 경제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그 기반이 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정부는 물론 기업이 노벨상에 기반이 되는 기초 과학 분야의 투자에 적극 참여하여 대학의 기초과학연구가 바로 국방과 산업발전에도 기본이 된다는 것을 상기시켜줬으면 한다. 지금과 같이 대학, 정부, 그리고 사회(민간기업)가 손 놓고 있으면 30년 후에도 우리에게 노벨상은 오지 않는다. 미국의 학술원에는 5,000명의 노벨상에 가까운 학자들이 있고, 미국과 유럽의 일류 대학도 몇천 명의 노벨상급 연구자와 학자들이 있다. 이들 중에 한두 명이 매년 노벨상을 받는다.
국가와 대기업, 그리고 대학은 어떻게 하여야 한 나라의 첨단 산업을 일으키고 유지할 수 있을까? 얼마 전 삼성 이건희 회장의 서거를 보면서 우리나라 기업이 세계 속에서 앞서가는 기업을 만드는 데 우리 대학의 졸업생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또 계속해서 세계 일류 기업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대학이 필요한지를 잘 암시하고 있다.
첨단 산업은 기업에서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첨단 연구 인력은 대학이 해주어야 한다. 세계 100위권 내에 들지도 못하는 대학들을 가지고 어떻게 세계 100위권의 기업을 만들 수 있는가. 이번 기회를 계기로 우리도 미국과 같이 ‘1조원 연구기금 모금 운동’을 제안한다. 서울대 동문은 물론 미래 한국을 선도하는 연구를 위하여 국가 정책만 바라보지 말고 하버드나 스탠퍼드와 같이 연구기금 마련에 획기적인 새로운 운동을 제안한다. 예를 들면 대기업(5개, 5,000억), 중견기업(10개, 3,000억), 중소기업(100개, 1,000억), 개인기부(100명, 500억), 소액 개인 기부(5,000명, 500억)를 목표로 기금 모금 위원회를 만들어 추진할 것을 제안해 본다.
또 다시 찾아온 노벨상의 계절 10월을 보내며, 20~30년 후 노벨상의 영광을 얻기 위하여 국가는 어떤 과학기술 정책을 해야 하며, 대학과 기업 그리고 개인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묻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서울대동문신문 [512호 2020년 11월] 오피니언 동문칼럼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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