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재모 머쉬텍 동충하초연구소 소장 / 강원대학교 명예교수 / 농학박사
‘동충하초’ 연구에 38년 현대인 건강의 새 지평 연 인물
- 동양의 3대 명약 동충하초 분류 학술적 체계 확립
- 현미 이용 대량배양 기술 개발로 건강증진에 기여
- 동충하초 사업화로 대한민국을 세계로 널리 알려
성재모 박사가 최초로 현미 이용 대량배양 기술 개발하여 자란 ‘동충하초 |
동충하초 한 분야에 38년의 긴 세월동안 연구부터 산업화까지 선구자 역할을 해 온 성재모 머쉬텍 동충하초연구소 소장 겸 강원대학교 명예교수는 현미를 이용해 동충하초를 대량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 국내는 물론 해외서도 인류건강 증진에 길잡이 역할한 동충하초 연구의 대가이다. 성재모 박사는 동충하초 균을 채집하여 분리해서 증식 시켜 재배하는 방법을 연구한 지가 벌써 38년이 되었다. 그의 연구가 세계 최초로 이루어져 MBN 천기누설 ‘동충하초로 당뇨를 잡다’, KBS, EBS, MBC 열정 백세 등 국내 방송은 물론 해외 방송에도 출연하여 건강에 좋은 동충하초를 알리는데 크게 기여했다. 남은 여생도 동충하초 연구와 활용에 바치겠다는 성재모 박사를 만나 동충하초와 함께 한 그의 삶과 연구업적에 대해 들어본다. <편집자 주>
본지 이도수 발행인 / 사진 김상진 부장
성재모 동충하초연구 박사 |
- 38년간 동충하초를 연구한 대가로 잘 알려져 있으신데 동충하초를 연구하게 된 동기를 말씀해 주시지요.
▲저는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발산리 괴정부락에서 해방 전에 태어나 농촌의 어려움을 보고 자랐습니다. 부모님을 잘 만나 어려움이 없이 자랐지만 어린 마음에도 <농촌도 잘 사는 방법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7살에 동네에서 나 혼자만 면 소재지에 있는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6.25 전쟁이 일어났고, 그 과정에서 환경이 어떠할지라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나름대로 부지런히 공부에 정진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혼자만 다녔기에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정비도 되지 않은 논둑길을 걸으면서 ‘나의 희망은 무엇이며 앞으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나는 ‘공부를 하는 것이 나를 위하고 전기도 없는 농촌을 일으키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부지런히 정진하면 언젠가는 노력한 결과가 나오리라 생각하고 노력한 끝에 서울에 있는 고려대학교 농학과에 입학을 할 수 있었습니다. 농과대학에 합격하여 첫 강의를 듣고 언젠가는 나도 학생에게 강의하는 교수가 되고 싶었습니다. 시골에서 살았기 때문에 기술을 배워 농촌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대학을 졸업 후에는 농촌진흥청에 가서 기술을 배우게 됐고, 조재영 교수님이 나에게 식물병리학을 공부하면 10년 후에는 내가 마음을 먹고 있는 꿈을 이룰 수 있다고 하시면서 병리과에 가서 과장님께 소개해 주신 덕에 임시직으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연구직 공무원으로 1970년 10월 1일 식물병리과에 정식으로 발령을 받고 식물 병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현미에 균주를 넣는 작업과정을 설명하는 성재모 박사 |
동충하초의 대량 배양에 관해 설명하는 장면 |
- 박사님의 첫 연구와 마지막 연구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 처음 연구한 것은 식물바이러스 연구였습니다. 그 후 진균 연구로 보리와 콩에 나는 병을 공부하면서 미국 자문관으로 온 스나이더 박사를 만나 토양 병원균에 대한 체계를 확립할 수 있었고 마지막으로 연구한 것은 벼 상자 육묘에서 일어나는 병이었습니다. 병리과에서 근무하는 동안 1973년 콜롬보 계획으로 뉴질랜드에 가서 식물 병 전반에 대한 분류연구를 할 수 있었고 1977년도에는 AID 플랜으로 미국 워싱턴주립대학교 병리학과에서 식물병리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강원대학교 교수이신 송융남 교수님이 미국에 오시어 같이 연구도 하고 수업도 듣고 친하게 지낸 인연으로 귀국 한 후 송 교수님의 추천으로 강원대학교 교수로 1984년 8월에 발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 교수 임용 이후에는 어떤 연구에 주력하셨나요.
▲ 대학교 교수가 되어서 어린 시절 꿈이 농부이었는데 무엇을 하여야 할 것인가 다시 생각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작물에 병을 일으키는 토양 병을 계속 연구할 것인가 아니면 주제를 바꾸어 버섯을 연구할 것인가를 고민했습니다. 식물 병은 공무원이나 교수들의 연구주제로는 좋지만, 농부에게 돈벌이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버섯을 연구할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버섯으로 주제를 결정하니 버섯을 연구하기 가장 좋은 환경인 강원도로 온 것은 커다란 행운이었습니다. 버섯을 연구하기로 한 다음부터는 강원대학교 학습림과 춘천 근교에 있는 산에 가서 버섯을 찾아 다녔습니다.
38년간 산과 들넠을 헤매며 채집한 수만가지의 귀중한 동충하초 자료를 보관하고 있다. 동충하초 자료를 보여주는 성재모 박사 |
38년간 산과 들넠을 헤매며 채집한 수만가지의 귀중한 동충하초의 사진 자료들 |
강원대학교 학술림에서 만난 동충하초, 송이버섯, 천마는 연구에 주축이 되었고 거기에 상황버섯까지도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버섯을 재배하는 데는 작물의 씨에 해당하는 종균이 가장 중요합니다. 당시에는 고체 종균을 사용했는데, 그것이 만들기도 번거롭고, 사용한 다음 쓰레기도 나오고, 배양 기간이 오래 걸리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액체로 종균을 만들면 모든 면에서 편리할 것 같고 자동화도 될 수 있다고 보고 액체종균 연구를 시작하였습니다. 농림부로부터 1995년 <느타리버섯 액체종균을 이용한 느타리버섯 생산에 관한 연구>로 액체종균 배양 장치를 만드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지금 대규모 버섯 재배 농가에서 이 액체종균 기술로 버섯을 재배하고 있어 버섯 산업화에 도움도 주었습니다. 1984년 강원대학교 학술림에서 처음으로 동충하초를 발견한 순간 동충하초 연구에 전력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 그 당시 동충하초 연구에 대한 내용이 없었을 텐데요, 연구에 어려움을 겪지는 않으셨나요. 그리고 연구를 통해 얻은 성과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지요.
▲동충하초 연구는 2가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산에서 동충하초를 채집하여 표본과 사진을 찍고 채집한 균주에서 균을 분리, 배양하여 동충하초를 쉽게 먹을 수 있게 동충하초의 자실체 대량 생산 방법에 관한 연구를 하였습니다.
한국에는 동충하초를 하는 과학자가 없어 나는 일본 과학자가 쓴 동충하초 도감을 가지고 연구를 하였습니다. 연구를 부지런히 정진한 결과 국내는 물론 외국에도 잘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인연으로 미국 오리건주립대학교 Spatafora 박사로부터 동충하초에 관하여 NSF로부터 연구비를 받았는데 동충하초를 하는 학생을 보내달라는 것입니다. 그때 침 나에게서 석사학위를 받은 제자인 성기호 학생을 보내어 동충하초 연구를 수행하였습니다. 박사학위를 동충하초로 하고 박사학위 논문을 기초로 좋은 논문을 Studies in Mycology 57 (2007)<Phylogenetic classification of Cordyceps and clavicipitaceous fungi>를 Centraalureau voor Schimmelcultures에 게재하게 되었습니다. 이 논문은 내가 채집한 표본과 사진을 인용하여 형태적인 특징과 분자생물학적인 기법을 이용하여 쓴 논문으로 동충하초를 하는 과학자는 다 보아야 하는 논문으로 인용 회수가 1,000회가 넘었습니다.
산에서 채집한 귀중한 동충하초의 사진들 |
산에서 채취한 희귀한 동충하초를 설명하고 있는 성재모 박사 |
내용은 동충하초 새로운 과 Ophiocordycipitaceae와 새로운 2속과 종명을 중국산 동충하초 Ophiocordyceps sinensis (Berk.) G.H. Sung,J.M. Sung, Hywel-Jones & Spatafora로 명명자로 붙인 것처럼 이제까지 등록된 동충하초 172 종의 명명자가 되었습니다. 과학자로 172종의 명명자가 된 것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주저자인 성기호 박사는 지금 가톨릭관동대학교 의과대학 국제성모병원에서 동충하초의 생리활성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Studies in Mycology 57 (2007)에서 논문이 출판된 이후 일본에서 2012년에는 동충하초 문화지에도 Sung으로 명명된 동충하초를 게재하였습니다. 2014년에 출판한 동충하초 생태도감에 명명자가 된 동충하초를 수록하였습니다. 2016년 중국에서 열리는 Cordyceps forum에 참석하였는데 홍유 박사는 중국산동충하초 (Ophiocordyceps sinensis)를 Sung에 의하여 명명된 학명으로 주제를 발표하였습니다.
- 동충하초의 학술적 연구부터 산업화까지 해 오셨는데 대량 배양연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것인가요.
▲ 학술적인 연구와 병행하면서 동양의 3대 명약인 동충하초를 대량으로 배양하여 많은 사람의 건강을 길잡이가 되기 위하여 대량배양 방법을 연구하였습니다. 한국을 비롯하여 외국에 가서 균주 수집에 전력을 다하는 동시에 대량으로 배양하는 방법도 연구하는 등 부지런히 기술을 개발하였습니다.
동충화초로 만든 제품들 |
제일 처음에는 동충하초를 대량으로 재배하려면 곤충을 이용한다고 생각하고 누에 번데기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누에 산업은 사양길에 있어 누에 번데기는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한 것으로 재배하였는데 먼저 중국에 가서 누에 번데기의 유통과정을 보고 싶어 한국과학재단에 방문 연구를 신청했더니 선정이 되었습니다.
중국 번데기의 유통과정을 보고 나니 중국산 번데기를 이용하여 동충하초를 만들면 위생적으로 안 되겠다는 생각하였고 한국에서 생산, 엄선된 재료를 이용하여 동충하초를 만들어 생산하여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비행기 속에서 CHON이 떠오르고 그 다음에 H2O 물이 떠올라 물을 가장 많이 섭취하는 작물이 벼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내가 개발한 액체종균 배양 방법과 교배형으로 번데기동충하초 Cordyceps militaris 자실체 형성방법으로 대량배양 길을 열었습니다. 한국산 번데기동충하초를 가지고 대량으로 생산하는 2004년 교배형을 이용하여 자실체 형성 방법 논문대로 자실체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이 방법을 현미에 적용하여 대량생산하는 방법을 개발하였습니다.
정부로부터 많은 연구비를 받았고 연구과제가 끝나면 논문과 함께 특허를 받았는데 지금 동충하초가 대중화가 된 것은 40개 특허 중에서 <단포자의 액체종균배양을 이용한 자낭균문 또는 담자균문 자실체의 대량생산방법>의 특허입니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특허를 받아 이 특허에서 기술된 내용을 가지고 중국 일본 동남아를 비롯하여 많은 나라가 번데기동충하초(Cordyceps militaris)에서 분리된 균주를 가지고 동충하초를 현미로 재배하고 있습니다.
Cordyceps militaris는 한국에서 가장 많이 자생하고 있으며 동충하초의 대표종으로 제일 처음 외국에서 연구가 되었으나 재배하지 못하다가 내 방법으로 현미로 대량 배양하는 방법으로 재배되고 있습니다.
- 동충하초로 여러 가지 건강식품이 개발되고 있는데 전망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현미로 대량 배양하는 방법을 개발하여 국립종자원에 등록된 성재모동충하초를 생산하여 많은 사람에게 무료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 소식을 일본에서 전해 듣고 일본 기리시마 주조회사 에나츠 전무님이 2002년 강원대학교 연구실로 방문하여 성재모동충하초를 가지고 술을 만들겠다고 하여 2007년부터 성재모동충하초로 금무도 옥금무도 옥종 등 3가지 술을 만들어 현재 판매되고 있습니다.
동충하초에 관한 연구를 하였지만 동충하초의 효능에 관한 연구는 <간기능 개선 및 면역기능 증진 기능성을 갖는 밀리타리스 동충하초 함유 건기식 개별인정형 제품 개발>의 제목으로 농촌진흥청 과제를 동아제약과 함께 연구한 바 있습니다. 연구 끝에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성재모동충하초>가 면역기능 증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생리활성 2등급을 받아 이곳에서 생산한 성재모동충하초를 가지고 동아제약에서 <동충일기>라는 건강기능성제품을 생산해 판매했습니다.
그리고 웅진생활건강에서는 웅진동충하초를 생산하여 홍보와 판매를 하고 있어 많은 사람이 건강을 지키는데 길잡이가 되고 있고 저희 회사 머쉬텍에서도 성재모동충하초생초 건배초 건초와 비로를 제품화하여 판매를 하고 있습니다.
- 박사님께 동충하초는 어떤 의미인가요.
▲어언 38년 내가 동충하초와 함께한 시간이었습니다.
동충하초를 만나기 위해 나는 국내의 수많은 산과 계곡을 헤매었고 어린 시절의 꿈이었던 히말라야 산자락도 밟아 보았습니다. 그 세월 동안 동충하초는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고, 가슴 가득히 히말라야의 기운도 넣어 주었습니다. 동충하초가 곤충에 침입하는 방법을 보면서 나는 지혜로운 삶을 깨달았고, 동충하초의 발생하는 장소를 보면서 다시 한 번 환경보호의 소중함을 마음 깊이 느꼈으며, 동충하초의 일생으로부터 중생의 윤회와 수행자의 좌탈입망을 함께 보았습니다.
학문적으로는 과학자로 동충하초 분류 체계를 확립하였고 또 많은 동충하초에 학명을 부치고 명명자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현미를 이용하여 대량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하여 한국 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재배하게 만들어 인류건강을 지키는 길잡이가 되게 하였습니다. 대량 생산 기술을 개발함으로 항암효과가 있는 코디세핀의 대량 생산과 신물질인 밀리타린의 발견으로 무한한 연구 가능성을 열어 주었으며, 손쉽게 복용할 수 있는 비로의 개발로 인해 많은 사람의 건강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제 동충하초는 단순한 연구대상을 넘어 나를 깨우치고 이끌어 주신 스승입니다. 나만의 깨달음이 아쉬워 동충하초가 많은 사람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동충하초만은 학문적으로는 동충하초의 분류체계를 확립하였고 산업화는 현미를 이용하여 대량으로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하였으므로 앞으로 조건이 주어지면 더 연구하여 동충하초하면 대한민국이 되고 동충하초 연구만은 세계1인자가 되고 싶습니다.
- 동충하초 연구에 38년을 받쳤는데 소회와 향후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가만히 삶을 돌아보면 30대까지는 많은 경험과 노력을 하면서 무엇인가를 할 것을 정하고 40대부터는 성재모동충하초를 가지고 연구하여 산업화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살아 왔습니다. 앞으로 무궁무진하게 연구할 것이 많은 동충하초를 다시 태어나서도 동충하초 연구와 사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삶의 지표가 되는 글을 올리며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바르고 천천히 흔들림없이 그냥 가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10년을 하면 위대해지고 20년을 하면 두려울만큼 거대해지고 30년을 하면 역사가 된다.”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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